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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방송의 문을 연 라디오의 역사

by 지식웰니스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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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전화라는 선행 기술이 무선전신이라는 원천 기술로 발전하면서 라디오가 등장하게 됐습니다. 전신은 유선으로 암호화-해독화한 메시지를 전송하는 기술로 전보가 전신을 이용한 서비스입니다. 전화는 암호화-해독화한 메시지 대신 음성을 유선으로 전달하는 기술입니다. 무선전신은 무선으로 암호화-해독화한 메시지를 전송하는 전신 기술이고 메시지 대신 음성을 무선으로 보내는 데 성공하면서 라디오가 탄생했습니다. 전신, 전화에서 무선전신을 거친 라디오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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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의 선행 기술, 전신과 전화

라디오(Radio)란 원래 무선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점차 전파에 의한 음성방송과 수신기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라디오파(Radio Wave) 즉 전파 자체도 라디오라 부르는데 전파는 전자기파 스펙트럼에서 적외선보다 진동수가 낮고 파장이 긴 전자기파입니다. 또한 라디오파를 이용한 통신 장비 중 수신만 가능한 단방향 통신 장비인 라디오 수신기(Radio Receiver)를 줄여서 라디오라 부릅니다. 라디오는 전신, 전화와 같은 원거리 통신의 선행 기술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지만 전신, 전화는 유선(Wire) 기반 기술이라 무선전신이 개발된 후에야 라디오 개발이 본격화됐습니다.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무선 기술로 음성과 음악을 전달하는 실험들이 있었고 그 결과 라디오가 탄생했습니다.

 

전신의 기본적인 단계는 파발마나 비둘기 통신같이 사람이나 동물을 이용해 정보를 직접 운송하는 것입니다. 불빛, 연기, 깃발 등 시각적 장거리 통신과 북소리 등 청각적 장거리 통신 수단도 함께 쓰였습니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클로드 샤프(Claud Chappe)가 시각 전신(Optical Telegraph)을 실용화했고 1837년 미국의 새뮤얼 모스(Samuel Morse)가 모스부호(Morse Code)를 활용해 전기통신(Electronic Telegraph)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모스부호를 활용한 전기통신으로 1844년 미국 워싱턴 D.C. 와 볼티모어를 잇는 64Km의 전신노선이 등장했습니다. 전신을 이용한 문서배달 서비스인 전보(Telegrams)가 등장해 정보나 메시지를 운송(Transportation)하는 것이 아니라 전송(Transmission)하게 됐습니다.

 

전신이 실현된 후 전신으로 암호화-해독화한 메시지가 아니라 음성을 직접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됐습니다. 음성은 전자기파의 변동으로 이뤄지므로 공기가 아닌 전류를 통해 전달 할 수 있는 변조장치 개발이 과제였습니다. 1876년 벨이 유선방식에 의한 음성 통신 장치인 전화를 발명하고, 1878년 에디슨이 음성을 기록하는 축음기를 만들면서 무선 음성 전달도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01년 캐나다의 레지날드 페든슨이 전파에 음성을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자신의 기지국에서 최초의 무선 음성 송신을 진행했습니다. 전화는 음성을 직접 전달한다는 특성으로 원시적인 라디오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전화로 새로운 소식, 음악, 설교, 강연, 가극 등을 사람들에게 전달했습니다. 18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속보가 전화로 중계되었고, 1896년 전국 네트워크로 발전했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텔레폰 힐몬도(Telefon Hirmondo)는 1893년부터 20여 년 동안 전화로 뉴스, 강연, 연극, 음악회 등을 전달했습니다.

라디오의 원천 기술, 마르코니 무선전신

1864년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이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 이론을 제시했고 1887년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가 전자기파를 만들어냈습니다. 1894년 이탈리아 물리학자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가 전자기파를 송수신하는 장치를 개발하면서 무선(Wireless) 시스템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마르코니의 목표는 전선을 이용하지 않고 모스부호(Morse Code)를 송신하는 데 있었습니다. 1896년 영국에서 무선전신(Wireless Telegraph) 특허를 획득했는데 많은 선박과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영국이 효율적인 통신수단으로 무선전신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었습니다. 마르코니는 1899년 도버 해협에 영국과 유럽 대륙을 잇는 무선전신을 설치했고 1901년 대서양 횡단 무선통신에 성공했습니다. 마르코니의 무선전신은 모스부호를 무선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라디오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하지만 케이블 선 없이 전달되는 무선전신은 원거리 통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라디오의 원천기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르코니가 1904년 파장조정기 특허를 얻어내면서 수신자들이 직접 원하는 주파수를 조정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세계 최초의 방송, 페센든의 실험

무선전신이 가능해지면서 모스부호 뿐만 아니라 음성을 무선으로 전달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음성과 음악을 세계 최초로 무선으로 내보낸 사람은 레지널드 페센든(Reginald A. Fessenden)입니다. 1906년 페센든은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서 수 마일 떨어진 대서양의 선박으로 자신의 목소리와 녹음된 음악을 전송하였습니다. 모스부호가 흘러나와야 할 수신 이어폰에서 음악과 음성이 흘러나오자 선박의 무선전신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페센든의 실험은 세계 최초의 방송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기존의 전신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정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신(Telecommunication)이었지만 페센든의 실험은 메시지를 한 지점에서 광범위한 지역으로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광범위(Broad)하게+던지다(Cast)라는 의미의 방송(Broadcasting)을 한 것이었습니다.

포리스트의 3극진공관과 라디오 방송

1904년 영국의 존 플레밍(Sir John Ambrose Fleming)이 파장으로 운반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이극진공관을 발명했습니다. 1906년 미국의 리 드 포리스트(Lee De Forest)가 3극진공관(오디온 진공관)을 발명하고 1907년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1908년 포리스트는 파리에펠탑 위에서 오페라 방송을 실험했고 1910년 뉴욕에서 오페라를 라디오로 중계했고 1915년부터 자신의 공장에 전파탑을 세우고 정기 음악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916년 미식축구를 중계했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1920년 미국 워싱턴의 아나고스티아 해군비행장에서 군악대 연주방송을 하면서 처음으로 방송전파가 발사됐습니다. 같은 해 웨스팅하우스의 KDKA국이 개국하여 하딩(Warren Gamaliel Harding) 대통령 선거결과 속보를 방송하면서 정규 라디오 방송의 시초가 됐습니다. 광고방송을 하는 방송국은 1922년 개국한 WEAF국이 최초고 영국에서는 1920년 마르코니 무선회사에 의한 실험방송 이후 영국방송공사(BBC)가 1922년 설립되어 최초의 뉴스 프로그램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921년 프랑스 국영방송, 1923년 독일방송회사가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라디오 방송은 진폭 변조(AM)에 의한 중파 방송으로 송출되었으나 1933년 암스트롱(Edwin Howard Armstrong)이 주파수 변조(FM)에 의한 초단파를 이용한 라디오 방송 송출 기술을 발명하여 특허를 취득하고 최초의 FM 라디오 방송국인 W1XOJ(WAAF)에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라디오는 1920년대 중후반 대중화되었고 대중문화를 선도했습니다. 1950년대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청취율이 떨어지고 텔레비전에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인터넷의 등장으로 라디오의 입지는 더 줄어들었습니다. 현재 자동차 운전자를 중심으로 미국의 라디오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디지털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고 스마트폰 등에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송출하는 음성 방송이나 인터넷 방송 애플리케이션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라디오 수신기 변천사

라디오 수신기로 처음에는 광석라디오(저마늄 라디오)를 사용했는데 저마늄 광석 결정을 써서 수신된 전파의 에너지로 이어폰을 울려 수신하는 수신기였습니다. 광석 라디오는 사실상 개인 라디오 수신기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진공관이 개발되면서 혼자 라디오를 듣는 시절에서 스피커로 여러 사람이 듣는 진공관 라디오 시대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품이 커서 라디오가 가구 수준으로 커지고 전력 소모가 많았습니다. 트랜지스터의 등장으로 라디오가 대폭 작아졌고 소모 전력이 줄어 건전지로도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1954년 미국에서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나오면서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황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970년대 말까지 트랜지스터가 라디오를 뜻할 정도로 휴대용 라디오의 인기가 높았고 대중음악 등 대중문화는 라디오 방송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집적 회로(IC)가 등장하면서 복잡한 복조회로를 칩 하나로 만들 수 있었고 노트 크기의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손바닥만 한 IC 라디오로 바뀌게 됐습니다. IC라디오는 주머니 속 휴대가 가능했고 전력 소모도 더 낮아졌습니다. 스피커가 초소형이라 소리가 작고 음질이 낮아 이어폰 사용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어폰 보급은 1980년대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인 워크맨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라디오의 역사

1915년 우리나라 최초의 무선전화 송수신 시험이 서울 경성 우편국과 세종로 체신국 사이에서 실시되었고 1925년 일본의 동경방송국이 개국에 이어 총독부 체신부 구내에 설치한 무선방송실험실에서 최초의 무선실험방송이 실시되었습니다. 1926년 경성방송국(JODK)이 설립되어 1927년 첫 정규 라디오 방송을 개시했는데 세계 6번째였습니다. 방송 초기에는 일본어 방송을 중심으로 약간의 한국어 방송이 있었고 1933년 한국어로 별도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935년 부산방송국, 1936년 평양방송국이 개국했습니다. 1945년 우리 나라에는 약 22만 7천대의 수신기가 있었고 1947년 국제무선통신회의에서 HL라는 호출부호를 받으면서 JODK(경성방송국)는 HLKA(현 KBS 1라디오)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950년 소형진공관 라디오가 들어왔고 AM과 FM을 겸한 라디오도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1957년 삼양전기, 1958년 금성사가 부품을 수입하여 라디오생산을 시작하였습니다. 1954년 기독교방송(CBS), 1961년 문화방송(MBC), 1963년 동아방송(DBS)이 개국했습니다. 1964년 개국한 라디오서울은 1966년 동양방송(TBC)으로 개명했습니다. 1965년 서울 FM방송국이 최초의 FM방송입니다. 1966년 FM 겸용 라디오가 나왔고 1970년 FM 스테레오 라디오가 등장했습니다. 방송 활성화와 수신기 가격하락으로 수신기보급이 증대됐고 1960년대 초 정부의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으로 라디오 보급이 더욱 확산됐습니다. 1959년 30만 대에서 1961년에는 100만대를 돌파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말에는 진공관식 대신트랜지스터 라디오만 생산했고 1973년 AM과 FM 겸용에 시계가 부착된 탁상용 라디오를 생산했습니다.

 

1960년대 TV는 아직 사치품에 머물러서 대중매체의 자리를 라디오가 차지했지만 1970년대 TV가 대중화되면서 라디오 청취율이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 황금 시간대도 오전~낮 시간대로 축소됐는데 1980년대 중후반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자동차 운전자들을 청취자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라디오는 민방 중심으로 운영되다가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공영화로 전환되었고 1990년대 민영 방송국이 부활하고 교통방송, 평화방송, 불교방송 등 특수 방송국이 개국했습니다. 2000년대 인터넷의 보급으로 라디오 방송을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고 2005년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 실시로 라디오의 디지털화가 진행됐습니다. 2010년대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앱으로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라디오는 메시지를 한 지점에서 광범위한(Broad)지역으로 던진다(Cast)는 방송(Broadcasting)이라는 신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라디오 자체는 비록 TV, 인터넷, 스마트폰 등 다른 미디어의 등장으로 대중매체 제왕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지만 라디오가 제시한 방송이라는 개념은 TV 등이 이어받아 대중문화의 황금시대를 열었습니다. 최근에는 유튜브 등 개인 맞춤형 방송이 거센 물결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유튜브 다음에는 어떤 방송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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