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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연한 선물 페니실린의 역사

by 지식웰니스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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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제일이라는 말, 독감으로 머리만 좀 아파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진리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발견들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의학 분야의 발견은 삶의 질이 아니라 삶 자체를 구한 귀중한 발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페니실린은 우연한 발견이라 여겨지지만 인류에게는 우연한 선물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플레밍이 발견하고 항생제로 개발되어 박테리아 감염을 퇴치한 페니실린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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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과 세균병인론

페니실린(Penicillin, Pen 또는 PCN)은 페니실리움(Penicillium) 속에 속하는 푸른곰팡이에서 얻은 화학 물질로 박테리아로 발생한 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베타-락탐계열의 항생제입니다. 고대부터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곰팡이를 사용했고 곰팡이에 의한 세균 생장 억제를 관찰했습니다.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등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술, 식초, 곰팡이 핀 빵 등에 있는 미생물을 의약소재로 사용했는데 곰팡이에서 항생제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17세기말 네덜란드의 안토니 판 레벤후크(Antonie van Leeuwenhoek)가 현미경의 원형인 기구로 관찰하면서 미생물의 존재가 처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760년대 오스트리아 빈의 의사였던 마르쿠스 폰 플렌시즈(Marcus von Plenciz)에 의해 세균 원인설이 주장되었지만 크게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를 막기 위한 우두법을 고안하면서 미생물에 의한 질병의 예방법인 백신접종법을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제너는 예방접종의 원리를 알아내지 못했고 1885년 파스퇴르가 백신에 의한 질병 예방원리를 알아냈습니다. 19세기 말 파스퇴르와 로버트 코흐 등의 노력으로 특정 질병은 특정 병원균 때문에 생긴다는 세균병인론이 확립됐습니다. 세균병인론으로 질병에 대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됐습니다. 세균병인론까지 의학이 발전했지만 미생물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항생제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페니실린과 항생제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플레밍은 세균울 연구한 미생물학자로 1922년 세균을 죽이는 리소자임을 발견하고 1928년 우연한 계기로 페니실린을 발견했습니다. 플레밍에게는 처칠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플레밍은 어느 날 물에 빠진 사내아이를 구했고 아이의 아버지는 플레밍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아이 아버지가 플레밍에게 소원을 묻자 플레밍은 의사가 되고 싶지만 돈이 없다고 했고 아이의 아버지는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아버지가 처칠이고 플레밍은 처칠의 도움으로 의과 대학에 합격하고 미생물학을 연구했습니다. 플레밍은 런던의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근무 중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는 샬레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고 휴가를 갔습니다. 휴가에서 돌아온 플레밍은 어디선가 날아온 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을 전부 먹어치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플레밍은 이렇게 우연히 발견한 푸른곰팡이가 박테리아를 용균시켜 자라지 못하게 하는 물질을 분비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페니실린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사람의 백혈구에 해를 끼치지 않고 생쥐에게도 거의 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1929년 연구결과를 영국 실험병리학회지에 발표했습니다. 1928년 이전에도 페니실리움(Penicillium) 속에 속하는 푸른곰팡이 주변에 박테리아가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 관찰됐지만 실험으로 밝힌 것은 플레밍이 최초였습니다. 페니실린은 박테리아 즉 세균의 세포벽을 합성하는 효소를 날려버려 세포벽이 자라지 못하게 만듭니다. 세균의 세포가 분열할 때 둘로 나뉜 부분에 격벽이 생기지 않아 내용물이 흘러나오면서 박테리아가 죽게 됩니다. 당시에는 치료제로 사용할 만큼 충분한 페니실린을 추출하지 못했고, 몸에 흡수된 후 쉽게 배설되어 질병 치료에 이용되지 못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플로리(Howard Walter Florey)와 체인(Ernst Boris Chain)은 페니실륨을 만들고 화학적 처리를 통해 가루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페니실린 크리소게눔이란 종이 발견되고 배양액 탱크에 공기를 넣어 대량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페니실린은 알약 형태로 만들어져 1943년부터 상용화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 부상자 치료를 위해 대량 생산이 시작됐고, 1944년 민간에도 보급돼 수많은 감염병 환자들의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1940년대 이후 더욱 발전된 항생제들이 나오는 데 1943년 미국의 생화학자 셀먼 왁스먼(Selman Waksman)이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을 발견하면서 항생제 개발이 활발해졌습니다. 페니실린 대량 생산을 고안한 플로리와 체인은 플레밍과 함께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플레밍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계획된 실험은 아니었지만 미생물학자로 오랫동안 연구에 매진한 노력이 우연한 발견으로 보상받은 건 아닐까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은 플레밍 본인보다 인류에게 더 운이 좋은 발견이었습니다. 페니실린은 항생제 개발로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현대 의학의 초석으로 전염병 퇴치를 위한 연구와 혁신에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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