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지식을 담고 전하는 보물창고로 중국에서 발명되어 유럽에서 제지기술이 꽃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이 이전에 선보였던 이집트의 파피루스부터 채륜의 종이를 거쳐 기계화에 성공한 유럽의 종이에 이르기까지 종이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파피루스, 종이의 기원?
종이(紙, Paper)는 ‘식물의 섬유질을 물에 불려 평평하게 엉기게 하여 잘 말린 물질’이라 정의됩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종이 대신 사용되었습니다. 돌, 금속, 찰흙이나 점토판, 양피지 등 동물 가죽, 거북이 등이나 동물의 뼈, 나무껍질, 나무, 대나무 등을 이용해서 기록을 남겼습니다. 기원전 25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종이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파피루스(Papyrus)였습니다. 나일강변에 많이 야생하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의 초록색 껍질을 벗겨 낸 뒤 하얀 속을 얇게 썰어서 겹친 다음 두드려서 끈끈한 액체를 발라서 압착 건조해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파피루스는 중국의 제지술이 유럽에 전해진 8세기까지 지중해 연안에서 소아시아에 걸쳐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영어 Paper를 비롯하여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종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파피루스일 정도로 영향력이 커서 파피루스를 종이의 기원으로 보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종이라고 규정짓기는 곤란하다고 합니다.
채륜, 종이(紙)를 발명하다.
중국에서는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간(簡)과 독(牘)을 많이 사용하였고, 비단도 사용되었습니다. 전한(前漢)에서 사용하였던 간은 대나무, 독은 나무 조각 표면에 나무즙으로 기록하여, 조각들을 끈으로 연결한 것입니다. 105년 후한의 채륜이 나무껍질, 마, 넝마, 헌 어망 등을 돌 절구통에 짓이겨 물을 이용하여 종이를 초조하는 방법을 발명했는데, 현대의 초지법(抄紙法)과 같다고 합니다. 채륜은 수공품을 원활히 조달하는 관리였다고 하는데 비능률적인 재래방법에 대한 연구의 결과 제지술을 발명하였다고 합니다. 폐물을 원료로 이용해서 저렴하게 대량생산을 할 수 있었고 사용과 휴대가 매우 편리했습니다. 하지만 풀솜 찌꺼기를 이용하여 제조하는 유사한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채륜은 제지술의 발명자라기보다는 완성자나 개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제지술과 목판인쇄술의 발달
6세기에 종이 제조시에 원료에 나무진[樹液]을 첨가하면 벌레가 해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당(唐) 나라 때인 7세기에 본격적인 색종이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7세기말부터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반대로 새겨 먹을 칠해서 종이 위에 찍어내는 목판인쇄술이 고안되었습니다. 당나라 후기인 9세기에는 인쇄술을 이용하여 시집, 역서(曆書), 자전(字典), 종교서 등이 출판되면서 종이의 수요는 크게 증대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제지술이 전파되다
당나라는 종이의 생산술과 이용법을 전국에 보급하고 서방세계에도 종이를 수출 하고 있었습니다. 751년 당나라와 사라센 제국 사이에 투르키스탄 지방의 탈라스강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당나라군이 패하면서 제지기술공이 포로로 잡혀가서 아라비아에 제지술을 전파하였습니다. 757년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제지공장이 세워졌고 795년에는 페르시아의 바그다드에, 그 뒤에 다마스쿠스에도 제지공장이 세워졌습니다. 900년에는 이집트에, 11세기에는 아프리카 북부와 지중해 연안에까지 제지술이 전해졌습니다.
유럽으로 건너간 중국의 제지법
1150년 당시 에스파냐(스페인)를 점령하고 있던 무어인이 하디바, 트레드, 바렌샤 지방에 최초의 제지공장을 만들면서 유럽 최초로 초지법에 의한 종이 제조가 이루어졌습니다. 1189년에는 프랑스의 에로에 에스파냐의 도움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졌고 프랑스는 중세 최대의 제지공업국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1276년, 독일에는 1336년 뉘른베르크에 처음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졌고, 영국에는 1498년, 미국에는 1690년에 네덜란드인에 의해 제지공장이 설립되었습니다. 1445년경 활자인쇄가 발명되고 보급되면서 유럽의 제지공업이 급속도로 발달했습니다.
기계제지법과 펄프의 발명
1798년 프랑스의 에로 제지공장에서 일하던 L.로베르는 종이를 초조하는 장망식(長網式) 초지기를 발명했고. 1808년에 푸르드리니어 형제가 개량에 성공했고 영국의 디킨슨이 환망식(丸網式) 초지기를 발명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1840년 독일인 F.G. 켈러는 동력으로 나무를 부수어 대량으로 섬유를 제조하는 쇄목펄프 제조기계를 발명하였습니다. 이 발명으로 목재섬유를 종이 원료로 쓸 수 있게 되어 마, 목면, 넝마 등 종이 원료의 공급 한계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 쇄목펄프 제조법은 1852년 영국의 H. 바제스에 의해 완성되었고, 1860년 독일인 H. 펠터가 실용화시켰습니다. 1854년에 소다 펄프가, 1866년에 아황산 펄프가, 1884년에 크래프트 펄프가 발명되었습니다.
한국의 종이
고구려 승려 담징(曇徵·579-631)이 중국에서 제묵법과 제지법을 배워 가지고 와서 625년경 일본 황실에 제작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삼국시대에 이미 제지업이 크게 번성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라시대에 제조된 범한다라니경이 한국에서 생산된 가장 오래된 종이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지소(紙所)라는 관영 제지공장에서 중국에 공물 하는 종이를 생산하였으며, 조선시대 세종 2년인 1420년에는 서울 장의사동(壯義寺洞, 세검정 부근)에 조지소(造紙所)를 설치했고 1902년에 기계에 의한 제지술이 일본으로부터 도입되었습니다. 한지는 예로부터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졌던 종이로 우리나라 특유의 기후에서 자란 닥나무가 있었고 조선 세종 때 조지서(造紙署)까지 설치하고 운영하는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제지술이 중국의 수준에 못지않게 발전되었습니다. 전통 한지는 결이 고와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수명도 천년 이상입니다. 투명하고 통풍성과 보온성도 뛰어납니다.
문자의 역사를 종이의 역사가 이어받는데 수천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종이의 역사를 인쇄의 역사가 이어받는데도 천년이상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쉽게 접하는 책 한 권에서 문자, 종이, 인쇄에 이르는 수 천년의 지혜와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