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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특허논쟁으로 더 뜨거웠던 전화의 역사

by 지식웰니스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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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버튼을 몇 번 누르기만 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전화의 발명은 보통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최초로 알려져 있지만 최초 발명자 및 특허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허논쟁으로 더욱 뜨거웠던 전화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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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이전의 전화

전화(電話, Telephone)는 그리스어로 ‘멀리’를 뜻하는 텔레(Tele)와 ‘소리’를 의미하는 폰(Phone)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멀리 전송하고, 이 전기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재생하여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통화를 할 수 있게 하는 기술 또는 장치입니다. 유선 전화기를 예로 들면 송화기에 대고 말을 하면 내부의 자석이 음성을 전기 신호로 바꿔 전선을 통해 전기 신호를 상대방 수화기에 전달합니다. 상대방 수화기는 전달받은 전기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변환시켜 들려줍니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실 전화기와 원리가 비슷한데 실 전화기가 실의 진동으로 음성을 전달한다면 전화기는 전선이나 전파로 음성을 전달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1837년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의사인 그라프톤 페이지(Grafton Charles Page)는 전자석으로 흘러들어 가는 전류가 빠른 속도로 방해를 받으면 소리가 방출되고 전류 방해 속도의 변화로 소리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1854년 프랑스의 샤를 부르쇨(Charles Bourseul)은 페이지의 원리를 활용해 음성에 의한 가요진동판(可撓振動板)의 진동을 이용하는 착상을 발표했습니다. 독일의 과학자인 요한 필립 라이스(Johann Philipp Reis)는 이 착상에 의한 실험으로 전화의 발명을 진전시켰습니다. 라이스는 1861년에 멀리 떨어진 두 장소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치를 발명하고 이 장치를 텔레폰(das Telephon)이라 불렀습니다. 독일 물리학회에서 소리가 공기 진동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공기 진동을 전류의 강약으로 바꾸면 음성을 전류에 실어 보낼 수 있다는 강연도 했습니다. 1863년 전화기를 출시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벨이 발명한 전화

농아 발성법에 관심이 컸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사람의 음성과 기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873년 보스턴대학교 음성생리학 교수가 되면서 전화에 대한 실험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고 합니다. 공기 진동을 눈에 보이게 하는 장치로 소리의 구조를 그릴 수 있다면, 농아 교육에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고 전류를 이용하여 소리를 재생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소리가 진동판을 진동시키면 유도전류에 의해 자석이 끌려갔다 멀어졌다 하면서 진동을 하고, 이 진동이 수신기에서 소리로 재생된다는 원리였습니다. 1876년 벨은 전화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는데 같은 날 그레이는 전화에 대한 특허권 보호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미국 특허청은 [전기 전동을 일으켜 목소리나 그 밖의 소리를 전신으로 전달하는 방법과 기구]라는 명칭으로 벨에게 전화에 대한 특허를 부여했습니다. 특허 3일 후 전화기 개발에 성공했는데 벨은 발신기에 대고 같이 일했던 전기기술자인 왓슨(Thomas Watson)에게 “왓슨! 일이 생겼으니 잠깐 와 주게!(Mr. Watson, Come here! I want you.)”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이 말은 최초의 전화 메시지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1876년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필라델피아에서 박람회가 개최됐는데 벨은 박람회 부스에서 전화기를 선보였고 100주년 박람회가 수여하는 상을 받았습니다. 1877년 벨 전화회사(Bell Telephone Company)를 설립했고, 벨 전화회사는 1885년 미국전신전화회사(American Telephone & Telegraph, AT&T)로 확대되었습니다. AT&T는 1892년 뉴욕과 시카고를 전화로 연결하였고, 1915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사이의 대륙횡단 통화를 성공시켰습니다. 독일에서는 우정성 장관이었던 하인리히 슈테판(Heinlich von Stephan)이 베를린-마그데부르크 사이의 시험통화를 거쳐 1877년 각 지방의 우체국에 전화기를 설치했습니다. 1881년 베를린에 국영전화국이 탄생했습니다. 1879년 프랑스 파리에 전화회사가 설립되었고 이탈리아나 북유럽에서도 1880년을 전후해 전화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벨과 전화 특허 논쟁

최초로 전화기를 만든 사람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벨은 전화를 만든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일 뿐이라는 주장도 많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전화기는 비슷한 시기에 여러 명의 발명가가 제작에 성공했고 벨은 비교적 늦게 발명했다는 주장들입니다 벨이 전화를 처음 발명한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전화를 처음 발명한 사람이 이탈리아 과학자인 안토니오 무치(Antonio Meucci)라는 주장은 지금도 빈번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무치는 1849년 전기 파동신호를 이용해서 최초의 전화기 모델을 쿠바의 아바나에서 개발했고 텔레트로포노(Teletrofono)라고 불렀습니다.

1854년과 1860년 사이에 전기로 작동하는 자석식 전화기를 개발한 후 1871년 임시로 특허를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정식 특허를 내기 위해 웨스턴유니언전신회사와 협의하는 동안, 회사가 설계도와 전화기 모델을 분실했습니다. 회사는 1876년 벨과 전화 제작을 논의했고, 벨은 전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무치의 임시 특허가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1874년 만료된 상황에서 벨이 1875년 특허를 신청, 1876년 특허를 받게 된 것입니다. 3년이 지난 1879년 무치는 벨을 사기로 고소했지만 1889년 무치가 세상을 떠나면서 재판은 끝났습니다. 2002년 미국 하원은 무치를 전화기의 최초 발명가로 인정하면서 “무치에게 특허신청비용 10달러만 있었다면, 벨은 특허권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원의 인준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는 1874년 신호음 전송에 성공하고 물을 이용한 음성전송으로 1876년 특허를 신청했는데 벨도 비슷한 원리로 같은 날 특허를 신청하면서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그레이는 벨이 특허 신청내용을 도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수많은 소송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화로 세계 최초의 공식 특허를 받고 사업을 벌인 업적은 여전히 벨의 차지입니다. 벨은 전화 특허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는데, 전화 특허는 미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단일 특허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전화기의 역사

음성이나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이를 전송로를 이용해 먼 곳까지 보내는 통신기기가 전화입니다. 전화는 전화기와 송수화자, 교환기, 망 등 관련 행위자 및 기술들이 포함되는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교환을 위한 신호기술이나 교환기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전화기가 개발되기 때문에 전화기의 역사는 교환기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합니다. 최초의 전화기는 부품들이 매우 커서 가정용 전화기가 현재 공중전화기 크기였다고 합니다. 지금 크기의 전화기는 1931년 에릭슨 1001 모델이 나오면서 부터라고 합니다. 전화기는 자석식, 공전식, 자동식 (다이얼식/버튼식)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석식 전화기

벨이 특허를 낸 법적으로 인정되는 최초의 전화기가 바로 자석식 전화기로 전자석에 연결된 엷은 철판을 진동시키면, 유도전류에 의해 수화기 끝에서 음성이 재생됩니다. 전화기의 핸들을 돌리면 발전기가 회전하여 교환기에 신호음을 보내 교환원을 호출하고 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공전식 전화기

자석식은 핸들을 돌려야 신호가 송출됐으나 공전식은 수화기를 들기만 하면 교환원에게 연결됐기 때문에 거는 방식이 간단하고 전화기 형태도 다이얼과 핸들이 없는 단순한 형태였습니다. 공전식은 모든 가입자의 통화전류를 전화국의 축전지에서 공급하는 공동전지식으로 가입자가 수화기를 들면 회선에 직류전류가 흘러 교환대에 설치된 램프를 점등시켜 교환원을 호출할 수 있었고 교환원도 상대방을 간단한 스위치 조작만으로 호출할 수 있었습니다.

자동식 전화기 (다이얼식/버튼식)

전화 가입자 수요가 폭증하면서 자동교환방식의 교환기가 설치되었고 교환원을 대신해 가입자가 직접 상대방을 호출할 수 있는 자동식 전화기가 등장했습니다. 자동식은 다이얼을 돌리거나 버튼을 누르면 자동 교환기가 호출한 전화기와 이어주는 전화기로 현재 이용되고 있는 전화기입니다.

자동 교환기

자석식과 공전식 전화기는 교환기와 교환수를 통해야만 상대방과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 수요가 폭증하면서 비효율적인 교환 방식을 대체할 자동 교환기가 발명되었습니다. 미국의 스트로저(Almon Brown Strowger)가 다이얼과 전자석을 이용한 자동 교환기를 발명하면서 원하는 사람에게 연결하기 위해 전화기에 다이얼이 생겼고 전화기마다 고유의 전화번호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전화의 역사

전화가 발명된지 6년 만인 1882년 톈진 유학생을 인솔한 김윤식이 톈진 전기국을 시찰할 때 처음 통화했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나라 사람 최초의 통화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같은 해 톈진 유학생 상운(尙澐)이 전화기를 가지고 귀국하면서 우리나라에 전화가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1896년 경운궁(현재 덕수궁) 등 중앙부서를 연결하는 전화선과 서울과 인천을 잇는 전화선이 가설되면서 최초로 전화가 개통됐다고 합니다. 당시 왕과 통화할 때 신하는 의관을 갖추고 큰절을 3번 올렸다고 합니다. 1902년 서울-인천, 서울-개성 간 전화가 개통되었고 한성(서울) 시내 교환전화가 개시되었습니다. 1905년 일본에게 통신사업권을 빼앗기고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전화 사업권이 일본에게 넘어갔습니다. 일제의 필요에 의해 통신망이 확대되고 1935년 자동식 전화기가 채택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통신망이 남북으로 분할되었으며, 6·25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1960년대 통신망을 복구하고 EMD 교환기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전화 보급이 시작됐습니다. 경제개발과 함께 전화 수요가 급증해 전화 적체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전화 적체가 극심해지자 전화 회선 양도를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금지조치 이전에 가입해서 양도 가능한 전화는 '백색전화', 양도 불가능한 전화는 '청색전화'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폭발적인 회선 공급으로 1980년대 남한에 천만 회선이 깔리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디지털로 변화하고, 전자교환과 광통신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9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하면서 전화사업이 본격 발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전화는 커뮤니케이션에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Tele) 음성 등 소리 (Phone)를 자유롭게 주고받으면서 공간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 비즈니스, 산업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전화의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의 새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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