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화가들이 보다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용한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장치에서 출발했습니다. 19세기 니에프스의 헬리오그래피, 다게르의 은판사진술인 다게레오타입, 톨벗의 종이 인화법인 칼로타입을 거쳐 사진이 점차 발전됐습니다. 빛으로 그리는 기술에서 독자적인 예술의 영역으로 자리 잡은 사진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빛으로 그리는 기술, 사진의 탄생
사진(寫真, Photograph)은 그리스어 Photos(빛)와 Graphien(그리다)에서 유래한 말로 1839년 존 F.W. 허셜 경이 처음 사용했습니다. 물리학적으로는 물체에서 반사된 빛과 같은 전자기적 발광을 감광성 기록재료 위에 기록한 빛 그림 즉 광화상을 말합니다. 사진술이 탄생하기 전 사물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법은 그림밖에 없었지만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1820년대 이후 사실주의가 유행하면서 그림에서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능력을 중요시하게 됐고 사물의 이미지를 기록하는 기술로 사진이 탄생했습니다. 사진의 아버지로 프랑스의 니에프스와 다게르, 영국의 톨벗 세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
16세기 화가들은 보다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라는 장치를 이용했습니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의 한쪽 벽에 작은 구멍을 뚫어 그 반대편 벽에 외부 정경이 거꾸로 맺히게 하는 장치였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오늘날 카메라의 원형이지만 빛을 물체에 정착시키는 기능은 없었습니다. 독일의 하인리히 슐츠(Heinrich Schultz)에 의해서 빛의 노출에 따라 질산은의 색깔이 변하는 화학적 반응이 발견되었고 영국의 토마스 웨지우드(Thomas Wedgewood)는 이 발견을 토대로 빛을 물체에 정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했습니다. 질산은 용액에 담근 종이나 가죽을 카메라 옵스큐라에 장착하여 상을 물체에 일시적으로 고정시켰지만 영구적으로 정착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니에프스의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
1826년 프랑스의 조세프 니세포르 니에프스(Joseph Nicéphore Niépce)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투영된 영상을 감광판으로 포착해 영구적으로 상을 물체에 정착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니에프스는 비투먼(Bituman, 역청)이라는 천연 아스팔트가 빛의 노출에 따라 굳는 성질을 이용해서 8시간의 노출 끝에 최초의 사진을 탄생시킵니다. 태양광선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라고 불렀는데 노출 시간이 너무 길어 상업화되지는 않았습니다.
다게르의 은판사진술,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1837년 프랑스의 루이 쟈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는 니에프스의 성과를 발전시켜 은도금 동판과 요오드를 이용해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 불리는 은판 사진술을 완성합니다. 다게레오타입은 사실상 최초의 카메라로 노출시간이 짧아지고 선명한 결과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1840년 다게르는 20배 밝은 개량 렌즈와 감광판 도금을 통해 선명한 명암을 표현하고 노출시간이 1분 정도로 짧아진 새로운 카메라를 개발했습니다.
톨벗의 칼로타입(Calotype)
1841년 영국의 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William Henry Fox Talbot)는 금속을 원판 재료로 하는 종이 인화법인 칼로타입(Calotype, Talbotype)을 만들었는데 음화로 감광판에 영상을 포착해 양화를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대량 복제를 가능케 했습니다. 하나의 음화에서 수많은 양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진술의 개념은 톨벗에서 시작됐습니다. 칼로타입은 다게레오타입보다 부드럽고 선명하게 표현되어 유화적인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칼로타입은 편안한 표현으로 예술에 적합하고 다게레오타입은 기록에 적합하다고 평가받았습니다.
19세기의 사진
1851년 영국의 F.S.아처는 습판사진술(Collodion Process)을 개발했는데 다게르의 은판사진이나 톨벗의 종이인화법보다 노출시간이 단축되고 음화에서 양화로 인화하는 과정도 간략해져 사진표현상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습판사진술의 출현으로 초상사진(肖像寫眞, 인물사진)이 유행했고 1850년대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영국의 사진가 D.O. 힐은 종이인화법으로 훌륭한 초상사진을 제작했는데 17세기 네덜란드의 사실적인 시민회화양식을 도입해 사실주의를 모색했습니다. 영국의 여류사진가 J.M. 캐머런은 습판사진술로 칼라일, 다윈, 테니슨 등 저명한 문화인들의 개성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초상사진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프랑스의 나다르도 습판사진술로 자연스러운 포즈의 명함판 초상사진을 선보였고 일상적 분위기를 살려 보들레르와 들라크루아와 같은 저명인사들을 찍었습니다.
19세기 사진의 주류는 회화적 사진(繪畵的寫眞)이었습니다. O.G.레일란데르나 H.P. 로빈슨이 미술의 조형적 원칙에 합치하는 사진을 주장했고 수정이나 합성인화(Montage)로 우화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회화적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레일란데르는 성인(聖人)이 도덕적인 설교를 하는 작품을 제작했고 로빈슨은 소녀가 꺼져가는 등불처럼 죽어가는 정경을 연출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극단적인 회화적 사진에 반기를 들고 1889년 영국의 P.H. 에머슨이 자연주의적 사진(Naturalistic Photography)을 제창하고 나섰습니다. 자연주의적 사진이란 인간의 육안에 의한 시각상(視覺像)에 접근한 영상을 얻기 위해 렌즈의 주변을 아웃 포커스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에머슨은 생활 주변의 자연풍경을 많이 찍어 주목을 끌었습니다.
20세기의 사진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A.스티글리츠는 선명한 핀트와 솔직한 사실주의로 영상의 현실감을 회복하려고 했는데 이러한 경향의 사진을 순수사진이라고 합니다. 순수사진은 19세기 회화적 사진의 문학성이나 우화적 내용을 벗어나 사진의 자율성을 강화했습니다. 대형카메라로 예술적 사진을 표현한 관례를 깨고 소형카메라(Hand Camera)로 생동감 넘치고 시적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스티글리츠의 영향은 미국의 E. 스타이켄이 이어받았고 사진계의 피카소라 일컫는 E. 웨스턴에게 이어졌습니다. 웨스턴은 예리한 질감묘사와 사물의 존재감을 파고드는 강력한 사실주의로 대상의 본질적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엄격한 리얼리티 표현으로 명상적인 세계를 이룩했고 웨스턴의 영향으로 미국 사진계의 거장이 된 A. 애덤스를 중심으로 F64 사진그룹이 탄생되었습니다.
1920년대 다양한 사진영상의 실험이 행해졌는데 헝가리의 L.모호이노디는 인화지에 물건을 올려놓고 빛을 쐬어 포토그램(Photogram)을 만들었고 빛에 의한 조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창했습니다. 독일의 J. 허트필드는 창조사진(Creative Photo)으로 알려진 특수기법으로 히틀러의 나치즘을 풍자했습니다. A. 렝거패츠는 신즉물주의(新卽物主義, New Objectivism)를 선보였는데 클로즈업 등 다양한 앵글로 리얼리즘을 살려 일상적인 제재(題材)를 포착했습니다. 렝거패츠의 일상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객관적인 기록성은 보도사진 발전에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을 계기로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려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태동하게 됐습니다. M.B.브래디는 위험을 무릅쓰고 6,000장이나 되는 전쟁사진을 찍었고 A. 가드너도 전쟁에 종군하여 1866년 [전쟁의 스케치북]을 발간했습니다. 남북전쟁 후 개척사업이 재개되자 가드너 등 남북전쟁 기록사진작가들이 미지의 처녀지 개척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J.A. 리스와 L.W.하인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덴마크 출신의 리스는 이민생활의 비참한 실태를 카메라로 찍고 신문에 실어 최초의 포토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하인도 남부 방직공장의 가혹한 아동노동 실태에 대해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여론을 만들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 미국 적십자구원사업의 기록이나 1930년대 대공황 전야의 미국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헤친 다큐멘터리 사진도 발표했습니다.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일어나자 농업안정국(FSA)은 농업과 농민문제를 계몽하기 위한 포토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이 캠페인을 위해 W. 에번스와 D. 랭이 2만 장이나 되는 생생한 기록물을 남겼습니다. 1936년 라이프(Life)가 창간되면서 포토 저널리즘(Photo Journalism, 보도사진)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도록 유도하여 포토 에세이나 포토스토리를 확립했습니다. 세계적인 보도사진가들이 라이프로 모여들었는데 M. 버크화이트가 대표적인 사진가였습니다.
1920년대 소형 카메라가 개발되어 기동성 있게 순간을 잘 포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E.잘로몬은 카메라를 숨기고 법정이나 회의장에 침입해서 생생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런 사진은 숨김없고 솔직하다는 뜻에서 캔디드 사진(Candid Photograph), 스냅사진이라고 불렸습니다. 프랑스의 H. 카르티에 브레송은 소형 카메라의 대표인 라이카(Leica)로 스냅사진을 결정적 순간의 미학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미국의 I. 펜과 R. 아베던은 전후 광고사진에서 이름을 떨쳤고 다큐멘터리 사진은 미국의 W. 클라인과 스위스의 R. 프랭크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카메라와 사진의 보급
사진의 원판(Plate)은 1851년 영국의 스코트 아처가 콜로디온 습판을 발명하고 1871년 매독스가 젤라틴 건판을 발명했습니다. 1889년 이스트먼 코닥에서 셀룰로이드를 말아서 제조한 롤필름(Roll Film)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상은 코닥이 대신 해주면서 누구나 쉽게 사진 촬영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1925년 작고 가벼운 라이카 카메라의 등장으로 휴대가 간편해져서 일반인도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이후 컬러 필름이 등장했고 카메라는 자동 초점, 자동 노출 기능 등 기술적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20세기 후반 빛을 이미지 센서로 받아들여 디지털 정보로 기록하는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필름 카메라의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과 카메라는 일상 그 자체가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 컬러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생겼습니다.
사진은 처음에는 회화를 보조하는 개념이 강해 19세기에는 회화적 사진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20세기 회화적 사진을 벗어나 순수사진 등 사진만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면서 작품적인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카메라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실주의가 부각되면서 다큐멘터리, 보도, 광고, 패션 등 다양한 분야로 발전했습니다. 휴대폰에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누구나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