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아르파넷으로 시작된 인터넷은 불과 50여 년 만에 거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켰습니다. 인터넷이 연구용에서 개인용으로 확대되면서 소통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는 수많은 기술과 비즈니스가 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소셜 미디어, 소셜 네트워크에서 온라인 쇼핑과 모바일 웹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인터넷의 시작, 아르파넷(ARPANet)
인터넷(Internet)이란 이름은 1973년 빈튼 서프와 밥 간이 네트워크를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모든 컴퓨터를 하나의 통신망 안에 연결(International Network)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인터넷(Internet)이라고 불렀던데 기원합니다. 인터넷은 표준 인터넷 프로토콜 집합(TCP/IP)을 사용해 수십억 명의 사용자들에게 제공되는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입니다. 냉전시대였던 1969년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ARPA)은 컴퓨터가 먼 거리에서 서로 통신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아르파넷(ARPANet)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로 인터넷이 시작됐습니다.
아르파넷은 패킷 스위칭이라는 네트워킹 시스템을 활용해서 초기에 4개 지역을 네트워크로 연결했고 점차 더 많은 대학, 연구 센터, 정부 기관을 연결했습니다. 아르파넷은 초기에 연구목적이었으나 참여 기관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목적으로 아르파넷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습니다. 1983년 국방성이 군사용 네트워크 기능을 밀넷(MILNET, Military Network)으로 분리시키면서 아르파넷은 민간용 네트워크가 되었습니다. 1983년부터 아르파넷은 통신을 위해 사용하던 NCP(네트워크 제어 프로토콜)를 TCP/IP(전송 제어 프로토콜/인터넷 프로토콜)로 발전시켜 더 나은 통신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1970~80년대 인터넷
최초의 이메일
1969년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간에 메시지를 전송했지만 이메일과는 다른 형태였습니다. 1971년 아르파넷의 프로그래머 레이 톰린슨(Raymond Samuel Tomlinson)이 사용자명@컴퓨터명으로 이메일 주소를 표시할 것을 제안하면서 이메일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1990년대 무료로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가 등장하면서 이메일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Hotmail, Yahoo 같은 웹 기반 이메일 서비스가 이메일의 인기를 가속화했고 2000년대부터 이메일은 가장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 툴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인터넷의 시작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연결은 1982년 경북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에서 이뤄졌습니다. 텔넷(Telnet) 전용선으로 초당 1200개 신호가 전송되는 1200 bps급의 매우 느린 속도였지만 1969년 미국의 인터넷 개발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성공이었습니다. 1988년 천리안 PC통신 서비스가 등장했고, 1994년 한국통신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인 코넷(KORNET)을 선보이면서 인터넷 상용 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월드와이드웹(WWW)을 기반으로 인터넷이 빠르게 대중화됐고 1998년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DNS(도메인 이름 시스템)의 등장
IP(Internet Protocol) 주소는 인터넷을 통해 통신하는 각 컴퓨터를 식별하는 고유한 숫자 문자열입니다. 인터넷 초기에는 네트워크 호스트를 숫자로 된 IP로 식별했지만 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IP 주소로 관리하는 것이 힘들어져 DNS(도메인 이름 시스템)이 등장했습니다. DNS는 복잡한 숫자 문자열 대신 google.com 같이 읽고 기억하기 쉽게 1984년 만들어졌습니다.
AOL(아메리카 온라인)의 전화 접속 인터넷 서비스
인터넷은 초기에는 기업, 교육기관, 정부 기관에서 주로 사용했습니다. 1985년 등장한 온라인 서비스 제공업체인 AOL(아메리카 온라인)은 1990년대 가정에 전화 접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서 소비자 인터넷의 문을 열었고 인터넷이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다이렉트 메시징을 위한 IRC(인터넷 릴레이 채팅) 1988년 핀란드의 컴퓨터 과학자인 야르코 오이카리넨(Jarkko Oikarinen)은 그룹 커뮤니케이션, 데이터 전송, 파일 공유를 위한 프로토콜인 IRC(인터넷 릴레이 채팅)를 만들었습니다. IRC는 인터넷을 통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프로토콜이자 텍스트 기반 채팅 시스템입니다.
월드 와이드 웹의 시작
1989년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는 여러 CERN의 컴퓨터를 연결하기 위해 네트워크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했습니다. 버너스 리는 URI(Uniform Resource Identifier), 하이퍼텍스트 전송 프로토콜(HTTP), 하이퍼텍스트 마크업 언어(HTML) 등 웹(월드 와이드 웹, WWW)의 주요 구성 요소와 설계 원칙을 설명했습니다. 중앙 집중식 서버를 없애고 상호 연결되고 접근 가능한 웹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상업용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
조엘 퍼(Joel Furr)가 설립한 더 월드는 1989년 샌프란시스코의 기업과 가정 사용자가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초기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인 더 월드는 유료로 인터넷 연결을 제공했고 최초의 그래픽 웹 브라우저 중 하나인 웹 익스플로러를 비롯하여 월드 와이드 웹을 탐색할 수 있는 사용자 친화적인 도구와 인터페이스를 제공했습니다. 이메일, 뉴스 그룹, 온라인 채팅, 파일 공유와 같은 서비스도 제공했는데 더 월드의 성공으로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생겨났습니다.
1990년대 인터넷
최초의 검색 엔진 아키
1990년 캐나다의 앨런 엠타지(Alan Emtage)가 최초의 검색 엔진인 아키(Archie)를 개발했습니다. 웹 페이지를 크롤링하고 색인을 생성하는 현재의 검색 엔진과 달리 아키는 FTP(파일 전송 프로토콜) 사이트에서 파일 색인을 생성하고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이름이나 키워드로 특정 파일을 검색할 수 있었지만 웹 페이지 내의 콘텐츠는 검색할 수 없었습니다. 1994년 웹 크롤러, 라이코스, 1995년 알타 비스타를 거쳐 1998년 마침내 구글이 등장했습니다.
월드 와이드 웹 개발자가 만든 최초의 웹페이지
월드 와이드 웹을 만든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는 1991년 월드 와이드 웹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최초의 웹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웹 페이지에서 WWW의 개요,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설명, 웹 페이지를 만드는 방법, 텍스트와 이미지를 클릭해서 웹 페이지를 이동하는 하이퍼링크를 소개했습니다.
보안 프로토콜을 사용한 최초의 안전한 전자상거래
1994년 보안 프로토콜을 사용하여 안전한 온라인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전자상거래의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남성이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웹 브라우저를 사용하여 넷마켓 웹사이트에서 CD를 구매한 것입니다. 넷스케이프에서 개발한 보안 소켓 계층(SSL)이라는 보안 프로토콜을 사용하여 구매가 이루어졌는데 SSL은 신용 카드 정보를 암호화하고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안전한 데이터 전송을 보장하여 온라인 거래에 보안과 신뢰를 제공했습니다. 1995년 아마존(Amazon)과 이베이(eBay)가 시장에 진출하면서 온라인 거래가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 식스 디그리즈
1996년 앤드류 와인라익(Andrew Weinreich)이 설립한 식스 디그리즈(Six Degrees)는 최초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다른 사용자의 프로필을 탐색하고 그룹 및 포럼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식스 디그리즈는 프로필 정보가 제한적이었고 실시간 채팅, 비디오 통화, 사진이나 비디오 업로드를 할 수 없었지만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와이파이(Wi-Fi)의 발명
와이파이(Wi-Fi)는 장치가 케이블 없이 LAN(로컬 영역 네트워크)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되어 무선으로 통신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입니다. 1997년 빅 헤이즈(Vic Hayes)의 NCR Corporation 연구팀이 최초의 무선 LAN(WLAN) 표준을 개발했고 와이파이 기술의 기반을 제공합니다. 1999년 비영리단체인 와이파이 얼라이언스(Wi-Fi Alliance)는 규격을 준수하는 기기를 인증하여 다양한 제품 간 상호운용성을 보장함으로써 일반인에게 Wi-Fi를 제공하였습니다.
마침내 등장한 구글
1998년 스탠포드 대학에 다니던 래리 페이지(Lawrence Edward 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Mikhailovich Brin)이 구글 검색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페이지 간의 링크를 분석해서 웹 페이지를 관련성과 중요성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알고리즘인 페이지 랭크라는 개념을 개발했습니다. 도메인 이름인 google.com은 1997년 등록했고 1998년 캘리포니아 멘로 파크에 구글을 설립했습니다. 구글 애드워즈, 구글 이미지, 구글 맵, 지메일, 구글 독스, 구글 드라이브 등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했고 구글은 세계 최고의 검색 엔진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인터넷
닷컴(.com) 버블의 붕괴
1990년대 후반 벤처캐피털과 개인투자자들이 인터넷 산업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하면서 닷컴(.com) 기업들의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수익을 내지 못해 2000년대 초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닷컴 버블 붕괴를 불러왔습니다. 닷컴 기업들의 주가가 실적보다는 미래의 기대에 따라 지나치게 고평가 된 것이 닷컴 버블의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버블 이후 인터넷 기업들은 사업 실적을 바탕으로 한 지속 가능한 성장에 주력하게 됐습니다.
사용자가 만드는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시작
2001년 지미 웨일스(Jimmy Donal Wales)와 래리 생어(Lawrence Sanger)에 의해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가 시작되었습니다. 더 빠르고 광범위한 콘텐츠 생성을 위해 지식 공유 공동체 중심의 웹사이트를 고안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사용자들이 내용을 추가, 편집, 수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 누구나 새로운 기사를 작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300개 이상의 언어로 된 수백만 개의 기사를 포함하는 역사상 가장 큰 지식의 보고입니다.
마이스페이스(MySpace)와 싸이월드
2003년 톰 앤더슨(Tom Anderson)과 크리스 드울프(Chris DeWolfe)는 마이스페이스라는 소셜 네트워킹 플랫폼을 시작했습니다. HTML과 CSS 코딩으로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담긴 사용자 프로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연결하고 사진과 음악을 공유할 수 있어서 음악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마이스페이스는 2006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사이트가 되었지만 2008년 페이스북에 추월당했습니다. 미국에 마이스페이스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싸이월드가 있었습니다. 도토리로 미니 홈피를 꾸미고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기분을 표현하고 일촌 맺기로 소통하면서 말 그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튜브(YouTube) 드디어 등장하다!
2005년 페이팰(PayPal)에서 일하던 자베드 카림(Jawed Karim), 채드 헐리(Chad Hurley), 스티브 천(Steve Chen)이 유튜브를 개설하였습니다. 동영상 플랫폼으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자 이 플랫폼의 가능성을 알아본 구글이 2006년 16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고 현재 인터넷 사용자 거의 모두가 사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아이폰(iPhone)이 만든 모바일 웹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을 대중화하고 모바일 웹 브라우저 사파리(Safari)를 도입해 간편한 웹 브라우징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애플(Apple)은 개발자들이 앱을 만들고 수익을 창출하는 앱 스토어(App Store)도 선보이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2010년대 인터넷
2010년대에는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인스타그램(Instagram) 등 각각 개성이 다른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고 온라인 쇼핑에 이어 인터넷 뱅킹도 일상화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점으로 시작한 넷플릭스(Netflix)는 구독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통적인 텔레비전 산업을 뛰어넘는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유튜브는 사용자 생성 콘텐츠 플랫폼 중에서도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며 유튜버가 유망직업이 되었습니다. 2019년 시작된 코로나 판데믹 기간 세계적인 봉쇄나 사회적 거리두기, 원격근무, e-러닝 등 생활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온라인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온라인 게임 사업은 번창했고 VR과 메타버스 사업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사이버 범죄의 증가로 사이버 보안이 중요하게 되었는데 바이러스 백신과 악성 소프트웨어 방지, 해킹 탐지 및 방지 시스템, 가상사설망(VPN)과 같은 기술은 인터넷 사용자에게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단 하루라도 모바일 웹 등 인터넷을 떠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많은 경제활동, 정보수집이 인터넷으로 이루어지고 소셜 네트워크로 보내는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유튜브의 강세는 당분간 이어질 듯합니다. 언젠가는 유튜버가 아니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