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까지 골프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등 영국에서만 인기 있는 스포츠였습니다. 19세기 후반 골프가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점차 골프의 중심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졌습니다. 미국골프의 세계화부터 한국골프까지 골프 역 사 여행을 떠나 보겠습니다.
초창기의 미국 골프
미국 건국 이전인 1650년 골프와 비슷한 콜프(KOLF)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고, 1739년 골프 장비를 선적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독립 전쟁 중이던 1779년 골프 클럽에 대한 광고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골프는 19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신대륙에 건너와 1873년 캐나다에 아메리카 대륙 최초로 로열몬트리올골프클럽이 창설되었고, 1887년 미국 최초의 클럽과 코스를 자랑하는 폭스버그골프클럽이 발족되었습니다. 1888년 스코틀랜드 출신인 레이드가 뉴욕의 욘커스(Yonkers)에 세인트앤드루스 골프클럽을 만들었습니다.
미국골프협회(USGA), PGA, PGA투어, LPGA
1894년 미국골프협회(USGA)의 전신인 미국아마추어골프협회가 창립되었고, 1895년 제1회 아마추어선수권대회와 전미(US) 오픈선수권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860년에 시작된 영국의 브리티시 오픈에 비하면 미국 현대 골프의 시작은 영국보다 한참 늦은 셈입니다. 미국골프협회와 함께 미국 골프는 빠르게 발전했는데 출범 당시 5개 클럽에서 1910년 267개, 1932년 1,138개, 1980년대 5,000개, 현재는 9,700개가 넘는 클럽 수로 미국골프협회는 세계 최대의 골프 협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16년 뉴욕에서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Professional Golfers` Association of America)가 출범했습니다. PGA는 PGA 챔피언십 외에도 시니어 PGA 챔피언십, PGA 그랜드 슬램 오브 골프, 라이더 컵(Ryder Cup)등을 주관합니다. PGA 투어(Professional Golf Association Tour)는 1968년 미국 프로골프협회(PGA)에서 독립해 프로선수들의 토너먼트 대회를 운영하는 별도의 조직입니다. PGA 투어는 1월 초 첫 대회를 시작으로 12월 초까지 진행됩니다. 1950년 결성된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는 여자프로골퍼들이 참가하는 골프 대회인 LPGA 투어를 엽니다. 보통 2월부터 12월까지가 대회 시즌입니다.
20세기 현대 골프를 이끈 미국 골프
20세기 미국 골프는 현대 골프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898년 미국의 코번 하스켈은 최초의 고무공인 하스켈 공을 발명했는데, 골프 장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1925년 미국 텍사스에서 골프장 페어웨이 관개 시스템이 처음 만들어졌고 1932년 미국의 프로 골퍼 진 사라젠에 의해 최초의 샌드웨지가 등장했습니다. 명품 클럽 회사인 테일러메이드의 등장, 우드 클럽을 나무에서 금속 재질로 교체한 것 등 수많은 장비와 물건이 미국에서 발명되거나 개선됐습니다.
현대 골프의 규칙, 제도에도 미국이 끼친 영향은 막대합니다. 1911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국가 전체의 통일된 핸디캡 지수를 도입해서 핸디캡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골프 규칙도 영국골프협회(R&A, The R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Andrews)와 미국골프협회(USGA, United States Golf Association)가 공동으로 4년마다 개정해서 세계공통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해당 규칙은 전 세계 아마추어 및 프로 골퍼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으로 모든 경기가 이 규칙대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1947년 미국 최초이자 세계 최고의 골프 잡지로 꼽히는 골프 월드가 창간됐고, 1958년 세계골프연맹(WAGC)이 뉴욕에 설립되었습니다. 메이저 골프 대회의 본격적인 TV 방영과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같은 슈퍼스타까지, 20세기 골프 역사는 대부분 미국에서 쓰여졌습니다. 20세기 골프의 중심지는 미국이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의 골프 역사
1900년 세관 관리로 고용된 영국인들이 원산 세관 구내에 6홀 코스를 만들어 경기를 한 것이 우리나라 골프의 시초입니다. 1919년 효창공원에 미국인 댄트(Dant,H.E.)가 설계한 9홀 코스가 생겼고, 1924년 청량리에 새로운 코스가 생겼지만 초창기에는 외국인 선교사와 외교관들이 주로 골프를 했기 때문에 국내에 확산되지는 못했습니다. 1929년 영친왕이 골프장 대지를 무상 대여해 주고 건설비 2만 원을 하사한 18홀의 서울컨트리클럽이 능동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개장했습니다.
1924년 경성골프구락부가 결성되면서 일반인에게 골프가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골프를 가르칠 지도자가 없어 일본에서 지도자들을 초청해 지도도 받고 시범경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약 50여 명의 골퍼가 있었습니다. 1937년 조선골프연맹이 결성되었고 1941년 연덕춘이 우리나라 최초로 일본 오픈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프로골퍼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1953년 서울컨트리클럽이 재건되면서 골프가 다시 보급되기 시작했고 1965년 한국골프협회가 창립되었습니다. 1986년 골프는 서울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한국 골프의 대중화, 세계화
골프는 오랫동안 부유층의 전유물이자 귀족 스포츠로 인식됐지만 1990년대 후반 박세리 선수의 세계적인 명성과 활약으로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박세리 선수는 1998년 US 여자오픈, 자이언트 이글클래식 등 4개 대회를 석권하며 골프 여왕으로 떠올랐습니다. 1999년에도 4승을 기록, 2년 연속 4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박세리 선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심어주면서 수많은 박세리 키즈를 탄생시켰습니다. 한국 여자골프는 최근까지도 세계 톱클래스를 유지하고 있고 남자골프도 PGA 우승 트로피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19세기까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가 영국화했던 골프를 20세기에 미국이 세계화시켰습니다. 21세기에 한국여자골프는 골프를 한국화 하고 있습니다. 종주국 영국과 세계화의 거인 미국을 넘어선 한국여자골프는 한국의 저력 그 자체입니다.